
“나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불행한 자들의 눈에서 무수히 많은 달빛을 보았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포르투갈 가수·1920∼1999) 애인이 탐욕스러운 부자에게 몸을 팔고, 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불행한 존재인지 느끼게 된다. 나는 리스본에서 파두(포르투갈 민요) ‘뿌리’를 들으며 깊은 상념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독일의 평론가 발터 베냐민이 거리의 현수막에서 ‘기민한 언어’를 발견했듯이 통속적으로 들리는 노래의 가사에서 보편적 언어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의 눈을 보며 자신의 현재 상태를 깨닫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 루치아’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지만 한 노동자의 죽음은 무시한다. 재벌 3세가 사는 미슐랭 식당의 밥을 얻어먹고 공짜 골프와 해외여행 접대는 즐기지만 가난한 청년의 고통은 ‘그들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차갑게 비난한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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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06,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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