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회계사들'... 불신 키우는 아파트 외부감사
#. A회계사는 경북 지역에 위치한 156개 아파트 단지의 회계감사를 맡았다. 낮은 수임 단가가 '무기'였다. 수임료로 감사 한 건당 최저 10만9000원을 받았다. 문제는 수임료에 눈이 멀어 감사를 무리하게 수임하면서 벌어졌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A회계사가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훑어본 후, 공사계약의 규정 이행 여부 미확인 등 다수의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투명회계 파수꾼'이라는 회계사들의 별칭이 부끄럽게 들리는 순간이다.
아파트의 관리비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 실시되고 있는 '외부회계감사제'가 되려 회계감사시장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
이 제도에 따라 지난 2015년(2014년 회계연도)부터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아파트)의 관리체제에 대한 외부회계감사가 의무화되어 있는데, 아파트 내 비리를 밝혀내는데 있어 감시자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비리 막겠다더니…절반은 '부실감사'
아파트 외부회계감사가 선택제에서 의무제로 바뀌기 전에는 '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은 소홀했다. 의무제 이전인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외부회계감사보고서에 대한 심리는 23건에 불과했을 정도다.
외부회계감사제를 정착시킨다는 차원에서 정부가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맡겨 처음으로 전반적인 심리를 수행했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6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이 발표한 '2014년 회계연도 외부회계감사보고서' 심리 결과에 따르면 전국 3349개 아파트 단지의 외부회계감사보고서 가운데서 1800개 단지(53.7%)의 감사보고서가 부실했다.
전국 9009개 아파트 단지 중 대량 수임 등으로 감사품질 저하가 의심되는 단지가 대상이었다.
아파트 내 중요한 공사계약과 관련해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던 부실감사의 비중이 전체 35.9%로 가장 많았다.
한 회계사의 경우에는 192개 아파트 단지 회계감사를 수임했는데, 무려 170개 단지의 보고서에서 '공사계약 관련 검토 소홀' 사실이 드러났다. 이어 '장기수선충당금 부과 검토 소홀(28.0%)', '감사업무 미참여(16.2%)' 등의 순이었다.
아파트의 회계비리를 부실하게 감사한 이들에게는 '일벌백계'가 마땅하다. 감독부처인 금융위원회는 676개의 보고서를 부실하게 감사한 감사인(회계법인, 감사반), 회계사에 최대 1년 이상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직무정지는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을 의미한다.
나머지 1124개의 보고서를 감사한 이들에겐 견책(경고)의 처벌을 받았다. 보고서에는 감사에 참여한 회계사가 전원 서명날인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를 어겼을 때 적발되는 경우 등이었다.
부실 외부감사 뿌리 뽑기 위해선…
외부회계감사에서 '비적정' 의견을 받으면 그 중에서 금전(아파트 관리비용 등)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부정의 비중이 크다. 2014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자산·부채, 과대·과소'라는 비정적 사유의 비중은 16.3%에서 1년새 23.2%로 올랐다.
회계사의 외부감사는 납세자가 올바로 세금을 냈는지의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과 감시를 강화해야하는데 이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실감사에 따른 징계철퇴가 내려지는데도 불구, '낮은 감사수임료' 등의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부실한 감사 행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회계사는 저가 입찰을 통해서 아파트 감사업무를 수임하는데, 회계업계에서는 이른바 '수임 단가 후려치기'가 빈번하다고 한다. 싼 값으로 다수의 아파트 감사를 수임하다보니 감사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윤태화 가천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아파트 감사에 싼 값의 주니어 회계사들이 투입이 되는데, 감사업무 비중이 크지 않기에 대충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외부감사보수를 현실화하지 않고서는 부실감사는 고질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 외부감사보수의 기준가격을 책정하는 논의가 이루어진바 있다.
박순철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 부단장은 "국토교통부에서 외부감사의 수임료를 두고 논의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아파트와 회계사 간 계약은 사적영역이기에 '정부가 개입하기 곤란하다'는 여론이 거세 수임료 정상화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외부감사의 부실을 회계사 탓만 하지 말고 아파트에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윤 교수는 "아파트 외부회계감사의 부실은 1차적으로 재무제표 작성 책임자인 관리회사에 있다"며 "회계감사의 부실을 막기 위해선 관리회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세일보 / 강상엽 기자 yubyoup@jose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