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방에 있을 때,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하나씩 세어보는 습관이 있다. 다들 어떻게 사는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을 보며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가끔 멈칫한다. 죽은 사람들이 친구 목록에 남아 있을 때. 처음 친구의 장례식에 간 건 29세 때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는 핑계로 갈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한남대교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세상이 아름답구나’ 감탄한, 아픈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도 생기 넘치던 나의 눈치 없음을 기억한다. 우리는 ‘82년생 김지영’과 인형 뽑기로 뽑은 도라에몽을 선물로 가져갔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페미니스트가 된 친구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크게 웃진 못했다. 친구가 너무 아파 보였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선 밤을 잘 새우던 친구였는데, 20분 정도 이야기하니 힘들어했다. 눕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고맙다고 웃어주었다. 그날 이후 친구의 어머니를 다시 본 건 장례식장에서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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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6,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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