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초기의 일이다. 조선 조정은 왜군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고민했다.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면서도 왜군의 대략적인 병력도 몰랐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려고 해도 왜군의 세력을 모르니 얼마나 파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왜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한 향리가 중요한 정보를 안고 탈출해 왔다. 처세술의 달인이었던 그는 왜군에게 잡힌 뒤 열심히 일을 해 신임을 얻었다. 적군과도 잘 사귄 그는 군량을 담당하는 왜군과 얘기를 나누다가 하루에 소모되는 쌀이 얼마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을 한 끼 식사분으로 나누면 왜군의 전체 병력이 나왔다. 왜군 장수는 조선 측 사절이 방문했을 때 그를 슬쩍 풀어줬다. 돌아온 그는 조선 정부에 자신이 가지고 온 정보를 보고했다. 선조는 그에게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지만 대신들은 거부했다. 조선의 군법에는 적에게 포로가 된다는 개념이 없었다. 죽지 않고 항복해서 포로가 되는 것은 사형이었다. 대신들은 빨리 그
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FkpqV0
via
자세히 읽기
March 19, 2019 at 03:00A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