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경성(현 서울)의 3·1 독립만세 운동 현장에는 독립선언서와 함께 또 다른 유인물이 뿌려졌다. ‘조선독립신문’이란 제호가 적힌 신문 형태였다. 이 신문은 3·1 독립선언의 취지와 함께 만세운동 상황을 알리는 목적이었고 당일 탑골공원에서 4000부가 배포됐다. 다음 날 신문 2호는 ‘근일(近日) 중에 가정부(假政府·임시정부)를 조직하고 가대통령(임시대통령)선거를 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임시정부의 출범이 임박했음을 예고한 것이다. 3·1운동 지도부가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기획할 때부터 임정 주도의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청사진을 준비한 정황이다. ▷이런 물밑작업 덕분인지 실제 상하이 임정은 속도감 있게 구성됐다. 3·1운동 함성이 터진 지 한 달여 만인 4월 11일에 임정을 만들어 국호(대한민국)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채택했다.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배경엔 긴박한 외교전을 고려했다는 관측도 있다. 그해 1월 개막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김규식이 조선독립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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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2,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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