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부엌 찬장에 라면 분말 수프를 쟁여 두곤 했다. 회사 근처 부대찌개집에서 라면사리를 주문하면 인스턴트 라면을 봉지째 제공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점포를 위해 개발된 상품인 ‘사리면’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하여간 자취인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주머니에 넣기 전에 동석한 사람들에게 묻기는 했다. ‘라면 수프 남는데 필요한 분 있나요?’ 다들 웃으며 손을 내젓곤 했기에 질문은 점차 ‘필요 없죠?’의 형태로 변했고, 서너 번 반복한 후에는 아예 묻지 않게 됐다. 그 다음 단계도 있었다. 질문이 역으로 나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여느 날처럼 식사를 마치고 외투를 입는데 한 후배가 속삭이듯 물어왔다. ‘선배, 이거 안 챙기시나요?’ 그의 손에는 라면 수프 두 봉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나이나 성별, 직급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방향으로 철들지 못했다. 사실 그런 조건들이 무의식적으로나마 언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늘 경계해왔다. ‘어른스러운’ ‘남자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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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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