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그날로부터 2개월 넘게 한국민이 사는 곳이면 국내외 어느 곳에서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본 측 통계에 따르더라도, 전 국민의 10분의 1인 약 2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맨손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이날의 선언은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하기 위함임을 밝혔다. 이 때문인가. 같은 해 아일랜드에서 독립선언이 있었고, 중국 베이징에서 5·4운동이 일어났다.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했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끝나고 민족자결주의가 지배적 원리가 되었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많은 피압박 민족 해방운동과 따로 있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사의 흐름을 이끄는 것이었다. 이런 독립선언의 정신을 구현하려면 우선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게 당시 선열들의 일치된 생각이었다. 마치 사전 시나리오라도 있었던 것처럼 각지에서 임시정부 수립 작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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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8,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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