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러다 보니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잔치를 베풀며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이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를 환대하는 행복은 대부분 넉넉한 사람들의 차지였다. 어느 날이었다. 그는 자신을 초대한 주인에게 식사에 초대하는 대상을 바꿔 보라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친구나 형제나 부유한 이웃들을 초대하게 되면 그들이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하게 된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초대를 주고받는 행위, 즉 상호적인 경제학일 따름이다. 그런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초대해 보라. 그들은 당신의 초대에 초대로 보답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이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한 환대의 역설이요 윤리였다. 소외된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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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6,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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