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용을 두고 당대의 명필이었지만 친일 행적 때문에 글씨가 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완용은 중국의 미불(米(불,비,패)), 동기창(董其昌) 같은 여러 명인의 서법을 깊이 연구할 정도로 서예에 심취했다고 한다. 독립문 현판이나 직지사 대웅전 글씨도 그가 썼다는 주장이 있고, 2005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홈페이지에서 이완용을 “당대 위대한 서예가”라고 칭송했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예와 인격이 일치하는지는 과거에도 논쟁거리였다. 청나라의 전대흔(錢大昕)은 예술과 인품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명나라의 풍반(馮班)은 예술과 인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 중간 입장을 취한 송나라의 소식(蘇軾)은 예술이 분명 인품과 관련이 있지만 기교로 은폐할 수 있기에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다고 했다. 명필인지 아닌지를 가리려면 그 평가 기준부터 세워야 할 것이다. 소식은 글씨에는 신(神·정신), 기(氣·기상), 골(骨·골격), 육(肉·근육), 혈(血·혈색)의 다섯 가지가 반
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CXlUiK
via
자세히 읽기
November 02, 2018 at 03:00A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