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탈린은 1952년 분할 점령 상태의 독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평화노트(Peace Note)’란 걸 제안한다. 독일과의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독일을 통일된 중립국으로 만들되 상호 군대를 철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지도자들은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북대서양 동맹을 통해 서독을 서구로 포섭하려는 모든 시도가 차질을 빚을 것이고 한번 차질을 빚자마자 다시 북대서양 동맹을 향한 모멘텀(momentum)을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거부했다.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의회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이 분포는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 직전에 공산당이 차지한 의석과 비슷한 비율이다. 이들 서구 공산당은 북대서양 동맹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사회민주당은 기독교민주당 총리인 아데나워가 각별한 결단력으로 추진하는 친서방 정책에 반대하면서 ‘우리 민족끼리(Wir sind ein Volk)’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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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3,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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