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에 애국지사 변호를 가장 많이 한 변호사가 가인(街人) 김병로, 긍인(兢人) 허헌, 애산 이인(李仁)이었다. 이들의 이름이나 호에 모두 ‘인’자가 들어가서 이들을 민족변호사 삼인이라고 부른다. 그중 한 명인 이인 선생은 변호사 개업 후 첫 사건으로 의열단사건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광주학생사건, 안창호사건, 수원고농사건, 6·10만세사건, 만보산사건 등 항일독립투쟁사에 남을 만한 굵직굵직한 사건에 거의 빠짐없이 관여하였다. 수원고농사건에서 불온 변론을 했다는 이유로 변호사 정직 처분을 받았으며 언론탄압 반대 연설회 등으로 여러 차례 유치장 신세를 졌다. 마침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어 4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미군정에서 수석대법관 및 검찰총장, 건국 후 초대 법무부 장관을 맡았다가 이승만 대통령과 뜻이 맞지 않자 물러났다. 이런 삶의 궤적을 가진 인물이라면 대체로 글씨체에 각이 뚜렷하고 필압이 강하다. 그런데 선생의 글씨는 그렇지 않고 부드러운 곡선이 두드러져서 강인함보다는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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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4,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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