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 선비는 젊어서 과거 공부를 하다가 합격하지 못하면 음풍농월을 일삼고, 조금 나이가 들면 돗자리를 짜다가 마침내 늙어 죽는다.” ―김낙행 ‘돗자리 짜는 이야기(織席說)’ 직장인의 종착지가 치킨집인 것처럼, 조선시대 선비의 종착지는 짚신 삼기 아니면 돗자리 짜기였다. 밑천도 기술도 필요 없다. 조금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농사짓는 백성은 물론 사찰의 승려도 감옥의 죄수도 모두 돗자리를 짜서 생계에 보탰다. 정승 이원익은 유배되자 친구들의 도움도 거절하고 직접 돗자리를 짜서 먹고살았다. 돗자리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했다. 송나라 사람 사채백은 ‘밀재필기’에서 고려 돗자리는 값이 비싸 구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뻣뻣한 중국 돗자리에 비해 부드러워서 접어도 상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었다. 골풀로 만든 용수석(龍鬚席), 등나무 줄기로 만든 등석(藤席), 꽃무늬를 넣은 채화석(彩畵席)은 중국에서도 고급품이었다. 매년 중국 황제에게 진상한 용무늬 돗자리 용문석(龍紋席)은 하나당 쌀 예닐곱 가마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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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1,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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