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래 백성들의 폐단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사채(私債)가 특히 심합니다. 흉년에 가난하고 초췌한 백성들이 먹고살 길이 없어 마침내 모두 부잣집으로 몰려가서 사채를 빌려 두 배의 이자로 갚고 있습니다. … 만약 갚지 못하고 본인이 먼저 죽으면 기필코 다시 그의 자손과 친족에게 거둡니다.” ―‘승정원일기’ 1725년 7월 16일 조선은 대출사업이 매우 성행했던 나라다. 조선 초기부터 쌀이나 비단 등으로 대출사업용 펀드(대금)를 조성했고 18세기부터는 화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대출자금 조성 행위를 ‘입본(立本)’이라고 하고, 대출사업을 칭하는 용어는 급채(給債) 방채(放債) 흥리(興利) 식리(殖利) 등이 있으나 식리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대출이자를 ‘이식(利息)’이라 하고, 50%가 넘는 고금리를 ‘장리(長利)’라 불렀다. 대출사업자의 공사(公私)에 따라 공채(公債)와 사채(私債)로 구분했으며, 해당 분야 전문가를 ‘흥리인’ 혹은 ‘식리인’이라 불렀다. 조선 건국 초기부터 대출사업은 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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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4,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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