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5년(정조 19년) 6월 정조는 강화도에 유배 중인 이복동생 은언군 이인을 대궐로 불렀다. 신하들은 “역적의 화근인 은언군을 만나지 말라”고 간언했다. 그러자 정조는 “더위에 땀이 나는데도 황기를 쓰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동생인 은언군을 만나는 일은 ‘더우면 땀이 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인데 이를 왜 병리현상으로 치부해 황기라는 약을 쓰라 하느냐는 비유였다. 황기는 다한증을 다스리는 대표적 한약재였다. 한의학에서 땀은 습(濕)과 열(熱)이 합해져 나오는 것으로 본다. 땅의 습기가 태양의 열기를 만나 구름, 비, 안개를 만들 듯 비위(脾胃·지라와 위장)가 만든 음식물 진액(습기)과 인체의 태양인 심장의 열이 만날 때 땀이 만들어진다는 것. 따라서 심장에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나 위장에 영향을 미치는 과식, 음주 등이 다한증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원인과 종류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 다한증을 치료하는 대세 약물은 역시 황기였다. 영조 17년 어의 김응삼은 영조가 여름감기로 인해 땀을 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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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06,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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