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바라기의 비명(碑銘)―함형수(1914∼1946)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돌을 세우지 말라.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지금이야 문예 잡지가 많지만 예전에는 많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에도 문예 잡지는 장사가 되지 않았다. 돈 없는 시인들이 종이 값이며 인쇄비는 어떻게 댔을까. 유복한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주머니를 털기도 했다. 배고픔과 바꾼 잡지. 밥보다 귀한 문학. 초창기의 문예지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쉽게 말하자면 고고한 자부심인데, 이 자부심을 찾아보는 것에는 아련한 재미가 있다. 1936년에 태어난 ‘시인부락’이란 잡지도 여기에 해당한다. 단 두 번 나오고 사라진 잡지였다.
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KQQI9X
via
자세히 읽기
July 14, 2018 at 03:00A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