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서울 사람은 걸핏하면 탕약을 지어 먹지만, 먼 산골짜기에 사는 백성은 의원과 약방이 있는 줄도 몰라서 병에 걸리면 누워서 앓기만 하다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이익 ‘성호사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람 서긍에 따르면 고려 사람들은 병에 걸려도 약을 먹을 줄 모르고 무당만 찾았다고 한다. 무식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료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양에는 그나마 혜민서, 활인서 등 백성의 치료를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지만, 지방에는 인턴에 해당하는 의생(醫生)과 진상 약재의 품질을 점검하는 심약(審藥)을 파견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조정에서 ‘향약집성방’을 비롯한 의서를 편찬, 보급한 것도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었다. 서울 양반들도 안면이 있는 관원에게 약재를 조금씩 얻어 쓰는 형편이었으니, 지방 백성은 약 한 첩 지어 먹기 어려웠다. 뜻있는 지방관은 지방 유지와 협력해 자구책을 마련했다. 1367년 안동부사 홍백정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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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3,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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