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7월 죽미령, 미 24사단 34연대 소속의 중대원들이 고지로 접근하는 북한군을 조준하고 있었다. 민둥산이라 사계는 완벽했다. 일제사격 한 번이면 북한군 전체가 쓸려나갈 것 같았다. “사격!” 그러나 어째 총성이 시원치 않았다. 북한군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전투는 허무하게 끝났고 미군은 후퇴했다. 알고 보니 병사들이 소총 관리도 제대로 못해 총의 3분의 1이 격발 불능이었다. 8월 낙동강 전선. 어느 미 육군 중대가 도로 옆에 숙영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장교가 여긴 위험하니 산의 사면으로 올라가라고 충고했다. 중대장은 충고를 무시했고, 조금 후에 박격포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한국전쟁에 처음 파견된 미군부대는 일본에서 빈둥거리며 살았다. 대대 단위의 기동훈련 한번 하지 않았다. 체력이 부족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한국의 가파른 산비탈을 기피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은 장교 감축에 나섰다. 지휘경험, 전투경험이 없는 장교가 퇴출 1순위였다. 연줄이 있는 장교들은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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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9,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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