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명종이 처음 들어왔을 때, 동래 사람들이 왜인에게 태엽 감는 법을 배워 서울에 전했다. 그러나 자세하지 않아 시계가 있어도 쓸 줄 몰랐다.(중략) 내 숙부 이민철이 조용한 곳에 자명종을 들고 가 시계 축 도는 것을 응시하고는 나사를 모두 뽑아 분해했다. 보던 이들이 모두 경악했으나 이내 조립해 이전처럼 완성했다.” ―이이명의 ‘소재집(疎齋集)’ 1631년 명나라에 갔던 정두원은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 호드리게스를 만났다. 정두원은 그를 통해 서양 화포, 자명종, 망원경, 서양 과학서를 사왔다. 인조는 서양 화포를 구입한 공을 기려 상을 내리려 했으나 조정 신료는 반대했다. 정두원이 구입한 물건 가운데 쓸모없는 게 많다는 이유였다. 그들이 보기에 자명종은 ‘예쁜 쓰레기’였다. 자명종은 서양 과학기술의 정수였으나 조선에서는 골동품처럼 집안 한구석을 장식하는 비싼 소품이었다. 조선과 서양의 시간 체계가 달랐고, 무엇보다 톱니바퀴 수십 개로 작동하는 기계였던 까닭에 작동 및 수리 방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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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05,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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