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이남에 무당 같으면서 무당이 아니고, 광대 같으면서 광대가 아니고, 비렁뱅이 같으면서 비렁뱅이가 아닌 자들이 있어 떼 지어 다니며 음란한 짓을 행한다.” ―이옥(李鈺) 전집 유랑하며 공연을 선보여 먹고사는 무리를 사당패라 불렀다. 사당패의 기원은 재승(才僧)이다. 재승은 승려로 사찰에서 열리는 불교 행사에 참여해 각종 연희를 선보였다. 재승 가운데 연예에 뛰어난 이들은 불경 간행, 법당 중수, 비석 건립 등에 쓰일 비용을 마련하려 절 안팎에서 공연을 했다. 원효 또한 파계한 이후 재승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애희로 중생을 교화했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 우란분재와 같은 불교 행사에서 여러 가지 연희를 선보였다. 불쌍한 영혼을 위로하는 수륙재 때 걸어두는 감로탱에는 사당패들의 연희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사당들은 무리를 지어 유랑하면서 연희로 돈을 벌었고 추워지면 본거지인 사찰로 돌아가 겨울을 나면서 기예를 연마했다. 안성의 남사당패와 청룡사의 관계는 유명하다. 이들은 어느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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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4,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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