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의 맹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점을 보고 경전을 외우는 판수가 되거나 침과 뜸을 놓으며 생계를 이었다.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소리에 민감해지기 때문이었다. 맹인 연주자를 관현맹(管絃盲)이라고 한다. 관현맹은 궁중 행사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기생의 가무에 반주를 맡았던 음악인이다. 여자 악공만으로 필요한 악기를 제대로 연주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남자 맹인 악사들을 동원했던 것이다. 세종 때는 음악을 관장하는 관습도감(慣習都監)에서 선발한 맹인 18인에게 음악을 익히게 하였다. 이들은 궁중음악인 당악(唐樂)과 우리 고유의 음악인 향악(鄕樂)의 전공으로 나뉘어 퉁소, 피리, 가야금, 거문고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다. ‘경국대전’에는 장악원(掌樂院)에 4명의 관현맹이 소속되었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많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폐지되었다가, 효종 때 다시 시행되어 궁중 연회에서 13인의 관현맹이 급료를 받으며 연주를 했다. 설치와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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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9,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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