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말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와 우리나라에 면직물의 자주화 시대를 열었듯, 한의학에서도 수입 약재의 국산화를 시도한 공신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0년의 기록에는 “성절사 의원(聖節使醫員) 이맹손(李孟孫)이 연경(燕京)에서 잡은 산 전갈 1백 마리를 조정에 바쳐 내의원과 대궐 내에서 기르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생전 처음 본 전갈을 신기해 한 성종은 “이 귀한 전갈을 어떻게 살려서 가져왔느냐”고 묻는다. 이에 이맹손은 “전갈을 잡아 궤(櫃) 속에 넣고 진흙으로 그 바깥을 발라서 흙이 마르면 물을 뿌리고 그 속에 먹을 것을 넣어주며 철망으로 그 바깥을 얽어서 빠져나오는 것을 막았다”고 답한다. 예부터 전갈은 넓디넓은 중국에서도 ‘만리(萬里)’나 떨어진 모래사막 지역에 사는 정말 보기 힘든 동물이었다. 아주 큰 숫자를 의미했던 ‘萬(만)’이라는 한자도 원래 전갈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였다. 전갈은 성종의 말대로 그만큼 귀한 약재였다. 전갈은 어둠 속의 사냥꾼으로 불린다. 빛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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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2,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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