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초대형 아스팔트 광장을 만든 건 1972년이다. 이듬해 그곳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0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열었다. 정치는 암울했지만 개발의 망치 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던 때다. 농촌을 떠나 도시의 삭막한 환경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마음의 안식을 종교에서 구했다. 교회마다 부흥사들의 전도 집회가 열렸고 그런 흐름의 시작에 그레이엄 목사가 있었다. ▷그의 1973년 여의도 집회에 가보지 못했지만 그 못지않게 컸던 1980년 여의도 집회에는 가봤다. 그의 설교는 논리적인 설득보다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말 한 단락이 끝나기도 전에 김장환 목사의 통역이 따발총처럼 이어졌다. 나중에 세계침례교총회장까지 된 김 목사가 유명해진 것은 1973년 집회의 통역을 맡으면서부터. 하지만 거꾸로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출신인 그의 유창한 통역이 없었다면 설교의 감동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레이엄 목사는 1950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만나 북한 공산당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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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3,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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