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는 늘 뭔가를 남에게서 빌린다. 그냥 빌리기도 하고, 때로는 빌려서 전복하기도 한다. 시인 천양희의 ‘나의 처소’에 나오는 ‘호곡장(好哭場)’이라는 표현은 좋은 예이다. ‘울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의 ‘호곡장’은 연암 박지원의 표현이다. 어감과 달리, 광활한 요동 벌판에 압도당한 느낌을 표현한 말이니 흔히 말하는 울음과는 거리가 멀다. 연암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벌판을 보고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벅찬 감정을, 아기가 세상에 막 태어나서 터뜨리는 울음에 비유했다. 그에게는 갓난아이가 우는 것이 어머니의 답답한 배 속에서 탁 트인 세상 밖으로 나온 것에 대한 환희의 울음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아이가 우는 이유가 정말 그러한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추사 김정희가 ‘요야(遼野)’라는 시를 썼을 정도로 연암의 비유가 절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연암의 말처럼, 눈물이나 울음은 슬픔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데 ‘나의 처소’는 연암의 표현을 빌리되, 단박에 그것의 방향을 슬픔 쪽으로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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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07,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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