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15년인 1433년 7월 어느 날, 지관 최양선이 조선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보현봉의 바른 줄기가 직접 승문원 터로 들어왔으니 바로 현무(玄武)가 머리를 숙인 땅으로서 나라에 이만한 명당이 없다”는 그의 발언 때문이었다. 보현봉의 곁줄기인 북악산 아래 자리 잡은 경복궁은 명당이 될 수 없고, 본줄기가 내려오는 승문원 자리(종로구 가회동·재동·계동 일대)가 으뜸 명당이므로 궁궐을 옮겨야 한다는 도발적 주장이었다. 최양선은 “승문원 자리로 궁궐을 옮기면 만대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까지 호언장담했다. 세종은 국가 공인 지관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조정 대신들에게 이 일을 논의하도록 했다. 당시 성리학을 숭상하던 유신(儒臣) 대다수는 최양선을 ‘망령된 자’로 몰아붙이면서, 세종에게 풍수설 같은 헛된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간언했다. 세종은 대안으로 100여 간 규모의 별궁 건설을 제시했으나 대신들은 이마저 반대했다. 결국 세종은 외교문서를 관장하는 승문원(현대 계동사옥 인근 추정)까지 아예
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ift.tt/2BEL3u3
via
자세히 읽기
January 31, 2018 at 03:00A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