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 때부터 머리숱이 적었다. 미드필더가 링커로 불리던 시절, 팬들은 악의(惡意) 없이 그를 ‘대머리 링커’로 불렀다. 단신(166cm)의 약점을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극복해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1988년 은퇴 뒤 한동안 잊혀졌던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폴란드전서 골을 넣은 황선홍이 달려와 코치인 그를 끌어안은 명장면 때문이다. ▷감독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물려받았지만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 동메달에 그쳤다. 프로 감독으로 1부 리그 우승도 없었다. 급기야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 몇 년간 실업자로 살기도 했다. 국내 3부 리그 격인 창원시청을 지도할 때 베트남 축구협회와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 10월 새 도전에 나섰다. ▷축구는 잘하지 못해도 그 열기만큼은 뜨거운 베트남 국민들은 처음엔 한국 3부 리그 출신 대표팀 감독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전까지 쓰던 포백(4명 수비)을 스리백으로 바꾸자 갑작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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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5,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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