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 여기로 온 뒤로 한술의 밥이나 한 모금 물도 다 적에게 나온 것인즉, 설령 적이 신을 죽이지 아니한다 해도 신이 차마 구복(口腹) 때문에 자신을 더럽힐 수는 없기에 식사를 거절하고 옛사람의 ‘자신을 깨끗이 하여 선왕에게 부끄럼이 없다’는 의리를 따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 삼천리강토에 있는 선왕의 백성이 어육이 되는 것을 구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신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최익현 ‘국역 면암집’의 ‘유소(遺疏)’》민족문화추진회에서 펴내는 고전국역총서 124권째가 ‘면암집’ 제1권이다. 최익현의 시와 상소문과 서간문이 실려 있다. 최익현이 장장 50년 동안 고종을 훈계하고 비판한 상소문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목숨을 걸고 쓴 것들이 많고 상소문의 과격함 때문에 귀양도 두 번이나 갔다. 이항로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면암(勉菴)’이라는 호를 받는다. 벼슬하려 애쓰지 말고 암자에 들어가 도를 닦는 수도승처럼 열심히 학문하라는 뜻이다. 최익현은 스승이 지어준 호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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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3,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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