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13일)는 장성택 전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소식이 전해진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세계가 경악했던 그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김일성의 사위에서 “개만도 못한 만고의 역적”으로 낙인찍혀 돌봐줬던 조카의 손에 처형당한 장성택의 일생은 통일 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 소재로 꽤 많이 활용될 듯싶다. 지난 4년간 장 씨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적잖게 들었다. 그는 캘수록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1980년대 말에 벌써 김정일을 가리켜 “저런 난봉꾼이 권력을 잡았으니 우린 희망이 없다”며 극소수 친한 지인들과 통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만큼 김정일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 씨는 김정일을 도와 손에 피도 많이 묻혔다. 그는 사위-매부-고모부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특히 장성택과 그의 가문을 보면 ‘사위의 저주’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장성택을 닮은 듯, 장씨 집안의 사위들은 누구도 비운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가문은 전생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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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4,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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