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9월 28일 오전 10시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앞 인민대회당 광장엔 건국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가 올라가고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 첫 정상회담 개막을 알리는 환영식이 열렸다. 노태우 대통령과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이 나란히 서고 중국 군악대 연주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는 벅찬 가슴,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2000년 가까운 대륙과의 관계, 한사군, 수(隨)와 당(唐), 임진왜란의 심유경(沈惟敬), 병자호란, 위안스카이, 마오쩌둥… 사대(모화)와 모욕의 시간이 머리를 스치고. 그리고 오늘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보다 우월한 국격으로 이 자리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 우남 백범 이범석 장준하가 이 땅에서 헤맸던 고통을 반추하는 감격이었다. 무엇보다 휴전선으로 꽉 막힌 ‘금단의 대륙’이 열리고 유라시아의 길이 뚫린 것이다.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만든 나라임에도 한중 과학기술장관회의 중국 측 요청 목록엔 병마개 기술 제공이 있을 정도로 민생기술이 낮은 때였다. 인구 11억 중국의 국내총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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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4,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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