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들어본,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말 중 하나는 영화 동아리 선배의 고백이었다. “나는 외로울 때마다 영화를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흠칫했는데, 첫째는 그 사람이 영화광이었기 때문이다. ‘저 선배, 그렇게 외로운 사람이었어?’ 24세의 나는 세련된 인간이라면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나는 한 번도 외로워서 영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선배를 이해하게 된 날이 있었으니, 그날은 처음으로 시집을 산 날이었다. 독립을 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건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공간에 오래 있다 보면 생기는 것이었다. 가족이 만드는 소리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땐 팟캐스트지” 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의 권유로 신형철 평론가편을 들어 보기로 했다. 그때 흘러나온 게 김소연 시인의 시였다.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빨래를 널다 자세를 고쳐 앉아 가만히 듣는다. 슬픔이 말라간다는 건,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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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6,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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