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8년 3월 경성제대 부속병원.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고향에 가져가지 말고, 선산 같은 데 쓸 생각을 말고, 서울 공동묘지에, 유상규 군이 누워 있는 공동묘지에 나를 묻어주오.” 안창호는 망우리공동묘지(지금의 망우묘지공원) 볕이 잘 드는 유상규(1897∼1936)의 무덤 바로 옆에 묻혔다.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은 정도로, 안창호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 유상규. 그는 안창호의 비서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유상규는 3·1독립운동 참여 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대 전신)를 중단하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안창호의 비서로 일했고 또 흥사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가 인재를 양성하고 민족의 역량을 키우라”는 안창호의 권고에 따라 서울로 돌아와 의사로서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받지 않고 진료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경성의전 강사로 일하던 유상규는 1936년 7월 환자를 치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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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3,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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