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결혼식에는 많은 스타들이 성장을 하고 나와 있었으며 결혼식장은 흡사 영화 촬영장 같은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1964년 11월 14일자 동아일보는 은막의 황금콤비인 신성일 엄앵란의 결혼식을 이렇게 소개했다. 결혼식 초청장이 암거래되고 몰려든 팬들이 4000여 명이라니, 당시 이들의 스타 파워는 레전드급이었다. ▷부부의 연을 맺은 뒤에도 이들의 삶은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자유분방한 영혼의 남편이 그 원인제공자다. 뭇 여성의 마음을 훔친 청춘스타답게 그의 여성편력은 화려하다. 오죽하면 바람기 잡겠다며 아내가 남편의 베개에 면도칼을 넣었을까. 결국, 요즘으로 치면 ‘졸혼’을 선택한 것이 1978년. 호적상 혼인은 유지하되 아내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 삼수 끝에 16대 국회의원 배지도 달아봤다. 의원생활 중 뇌물수수 혐의로 2년간 옥중생활을 했지만. “엉덩이가 예쁜 여자만 보면 뛰어가서 뽀뽀해 주고 싶다” 같은 출소 후 발언에다 외도를 고백한 자서전 탓에 ‘나쁜 남자’로 낙인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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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9,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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