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트러커(트럭 운전사)’ 황길재 씨(50)는 24일 오후(현지 시간) 40t 대형 트럭을 몰고 미국 미시간주에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정지된 스냅샷이 아니라 계속 시련과 응전이 이어지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2007년 서른여덟의 나이에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시작부터 시련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그를 뽑아줬던 미 회사는 문을 닫았다. 타국에서, 그것도 아들과 딸, 아내까지 데리고 실직을 한 것이다. 다행히 동포 언론사에서 일자리를 얻어 금융위기의 풍파를 견뎠다. 2013년 뉴욕에서 택시 운전에 도전했다. 처음엔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위기가 또 닥쳤다. 승차 공유 회사인 우버가 급성장하면서 벌이가 고꾸라졌다. 집으로 가져가는 돈이 1주일에 700달러(약 82만 원) 남짓으로 줄었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월세 1500달러를 내고 4인 가족이 살기에는 빠듯한 돈이다. 그는 “손님들이 편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MmCt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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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7,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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