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 슬픔에 붙들린다. 공감 능력을 갖고 태어난 탓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타인의 슬픔’은 그 공감을 주제로 한 따뜻한 시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나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타인의 슬픔을 보며/내 어찌 따뜻하게 위로해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시인은 공감의 문제를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으로까지 확장한다. “흐르는 눈물을 보며/내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자식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아버지가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감정이 또 있을까. 그런데 누군가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게 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슬픔으로 볼 수 있는 순수한 눈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타인의 슬픔을 보고 함께 슬퍼도 하고 위로도 해줄 수 있을 테니까. 만약 우리가 순수한 눈을 잃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당연히 타인의 슬픔이나 눈물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남의 눈에서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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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4,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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