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를 위해 싸워온 전시 성노예 피해자.’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NYT)가 이 같은 표현으로 고 김복동 할머니를 기리는 부고를 싣자 7일 일본 정부가 반론을 보냈다.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에게 성실한 사죄(sincere apologies)를 해왔다’는 주장이 골자다. 외무성 보도관 명의의 이 반론문에는 “일본 정부는 이미 전 위안부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거나 “NYT는 화해·치유재단의 지원을 모든 위안부가 거절한 것처럼 썼지만 생존 위안부 47명 중 34명이 (지원금을) 받았다”는 주장도 담겼다. ▷사죄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성실’이란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다. 가해자가 성실했다고 주장해도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죄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성실한 사죄라 하기 어렵다. 그것도 여성의 명예와 존엄,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무척 다루기 힘든 과제를 거론하면서 ‘성실’이란 그리 가볍게 쓰일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비근한 예로 2015년 12월 이뤄진 한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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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1,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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