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입구에 라면 박스를 쌓아두고 냄비에 끓여 길거리 시식을 제공하던 장면을 기억하는 내 아내는 1961년생 한국 여자다. 형제 많은 집 막내로 라면 한 박스를 구입하면 주는 홍보용 티셔츠를 오빠들이 서로 입겠다고 싸울까 봐 엄마는 몇 박스씩을 구매했다고 한다. 박스를 채 비우기도 전 냄비 바닥에 라면과 함께 잘 익은 애벌레가 있던 장면 역시 기억하고 있다. 당시엔 곡류에도 흔히 벌레를 볼 수 있어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이렇듯 라면에 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나의 기억은 1972년 2월 19∼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날 밤 배를 타고 시베리아로 떠나기 위해 요코하마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TV에서는 나가노현 아사마 마을에서 인질을 잡고 혁명을 주도한 ‘연합적군’에 관한 이야기가 24시간 생방송됐다. 영하 15도의 추위에 연합적군과 대치하고 있던 자위대의 점심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이 배급됐다. 전 일본 역사상 89.7%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진압과정과 함께
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SnFPLF
via
자세히 읽기
February 25, 2019 at 03:00A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