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화제가 됐던 한 드라마를 보면서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떠올랐다. 당시엔 고급 관리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출셋길이었던 만큼 유생들은 과거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이름 있는 양반집에선 사교육이 성행했고, 시험을 대신 봐주거나 시험 문제를 미리 알아내는 등 편법과 탈법이 넘쳐났다. 조선 후기엔 이런 폐단으로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상소가 잇따랐을 정도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도한 사교육과 편법은 사회질서를 흐리는 큰 문제다. 하지만 성공을 위한 방법이 ‘공부’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학문을 중시해온 전통 때문인지 공부로 평가한 것만이 객관적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교육 DNA’는 아마 그렇게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 삼국시대 이후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공부였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광경이었다. 중국 당나라 역사책인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고구려 사람은 공부를 좋아하고, 말먹이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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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2,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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