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양산이 고향인 김복동 할머니는 1940년 중국 광둥의 정신대로 끌려갔다. 면(面)에서 나온 사람은 “전쟁을 하는데 군복 만들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다. 안 가려고 버텼지만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을 추방할 것”이라 협박해 어쩔 수 없었다. 초경도 안 한 14세의 어린 소녀는 일본군의 성노예가 됐다. 8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그간의 사정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자식을 이래 만들어서, 저승 가서 조상을 어떻게 만나냐”고 자책하다 6년 만에 화병으로 세상을 떴다. ▷‘위안부 다녀온 죄’로 타향 부산에서 식당을 하며 숨어 살았다. 66세 때인 1992년 ‘수요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주 새벽 기차로 상경해 일본대사관을 향해 “다른 여자처럼 살 수 없게 맹글어 놓고. 날 좀 봐라”고 악을 썼다. “미안합니다.”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1993년 6월 유엔 세계인권대회도 찾아갔다. 김 할머니의 증언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쏟았다. 대회 결의문에 ‘일본군 성노예 범죄 조사기구 설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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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30,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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