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국민당 장제스 정부의 중국은 2차대전 때는 반(反)파시스트 연합국이었다. 하지만 종전 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돼 ‘죽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면서 냉전 상대방으로 바뀌었고 한국전쟁 때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다. 전환점은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1969년 남태평양의 괌에서 발표한 ‘닉슨 독트린’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닉슨의 이 말에 미국의 전략적 고려가 함축되어 있다. 두 나라 모두 소련에 공동 대응할 파트너가 필요했고 특히 중국은 문화대혁명 10년의 상처를 딛고 개혁개방의 길로 가는 데 미국이라는 경제 선진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핑퐁외교’를 거쳐 마침내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 협정이 발효됐고 덩샤오핑은 바로 미국을 방문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흡수하고 싶다”며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덩샤오핑이 1997년 2월 사망하기 전 생애 마지막으로 중국 밖으로 나갔던 미국 방문에서 하이라이트는 존슨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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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02,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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