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전인 1919년 오늘,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 황제가 67세로 훙서(薨逝)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 건강하던 고종이 이날 새벽 식혜 등 음료수를 마시고 갑자기 쓰러졌고, 시체가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는 점 등 때문에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분노한 민심은 2·8독립선언의 동력이 됐고, 고종의 인산일(因山日·3월 3일)을 앞두고 전국에서 모인 백성들은 3·1만세운동에 대거 합류했다. 수많은 청년들이 시위 도중 영전이 있는 경운궁에 몰려가 울부짖으며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특히 일제는 장례행렬 선두에 일본 전통 제례 복장을 입은 사람들을 세웠는데 조선왕조 전통 의례가 아닌 일본식으로 왜곡된 장례식도 민심에 불을 지른 요인이었다. ▷고종의 훙서는 제국(帝國)을 마감하고 민국(民國)을 탄생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2·8독립선언, 3·1독립선언으로 이어진 정신을 잇기 위해 그해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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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1,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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