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를 못하니 말도 못하게 고생했습니다. 닭고기가 먹고 싶으면 날개를 치는 모습을, 생선 요리가 생각나면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흉내 냈어요.” 1959년 한국 걸그룹 최초로 미국 연예계에 진출한 김시스터즈의 맏언니 숙자 씨(79)는 미국에 처음 오던 날을 ‘깜깜한 밤’에 비유했다. 호텔 몇 개와 먼지 풀풀 날리던 도로만 있던 라스베이거스, 아는 사람이라곤 미국인 매니저뿐이고 언어 음식 문화 모두 낯설었다. “동생 애자(작고)는 음식이 안 맞아 병이 났어요. 하도 고생을 하니 엄마(‘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 씨)가 깡통에 총각김치를 담아 미국으로 보내주셨어요. 그런데 안 오는 거예요. 공항 직원들이 깡통이 새서 냄새가 심하고 썩은 것 같아 버렸다는 거예요. ‘아, 이 사람들아, 그게 제일 맛있는 건데’라며 발을 굴렀습니다.”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미국인들의 차가운 시선에 눈물도 흘릴 만큼 흘렸다. “한국에서 들고 온 악보를 미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보여줬더니 어설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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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5,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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