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생 동안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 그중에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이별도 있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이별도 있다. 그 많은 이별 중에서 재회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완전한 이별이 사별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완전한 이별에는 특별한 조의를 표해왔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커다란 옹기를 관으로 사용해서 묻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고인을 가까이 두고 싶었는지 옹관을 집 근처에 묻었다. 그러다가 이런 매장법이 산사람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다. 점차 시신을 마을 밖에 묻기 시작했고 그래도 편안치가 않자 멀리 산 위 같은 곳에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마을과 사회가 커져 가면서 마을 입구나 사원에 공동묘지가 마련되었다. 우리는 유교문화의 영향인지 마을묘지나 사원묘지가 덜 발달했지만 유럽이나 일본에는 이런 공동묘지가 많이 발달했다. 유럽의 중세 어느 성곽 도시에 답사를 갔다가 유적지 옆에 마련된 작은 마을 공동묘지를 보았다. 그 작은 묘지에도 전몰장병을 위한 구역이 따로 설정되어 그들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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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4,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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