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한 선배가 충무로에 카페를 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에. 현대인에게는 건물 다섯 층을 계단으로 오를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인사차 방문한 나는 입지가 썩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술을 사오기 위해 한 차례 더 왕복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어깨로 문을 밀었을 때 선배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힘들지?”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내 숨소리와 안색이 충분히 하고 있었을 터. 하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좋은데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토끼굴에 빠진 기분도 들고….” 너스레였지만 온전히 허투루 한 말은 아니었다. 하나씩 켜지는 센서 조명들에 의지해 공간 감각이 옅어질 때까지 계단을 오르고, 끝내 꼭대기층에 다다라 시침 뚝 뗀 모양새의 문을 밀면 그 너머에 아늑하고 따뜻한 세계가 펼쳐지는 경험. ‘스피크이지’의 핵심 가치가 내밀함이라면 선배의 카페도 일련의 미덕을 갖춘 듯했다는 뜻이다. 스피크이지(Speakeasy)는 미국 금주령 시대에 몰래 술을 팔던 주점을 일컫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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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2,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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