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분석학은 히스테리 환자 치유라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환자의 치유는 물론이고 인류 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탄생 과정에서 빈의 내과 명의였으며 자신을 돌보아 주던 브로이어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히스테리 연구’를 공저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브로이어는 환자가 전이 현상을 일으켜 결혼하자고 포옹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중도 하차해 버렸습니다. 그가 계속했다면 적어도 정신분석학의 공동 창시자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반면에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일으키는 마음의 문제들을 집요하게 연구해 정신분석학을 학문, 치료법, 문화의 아이콘으로 확장시켜 오늘의 영광을 이루었습니다. 프로이트 생전의 정신분석학은 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폐쇄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천재성과 부단한 노력에 힘입어 크게 발전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의 수용에는 매우 인색했습니다. 다른 이론에 대한 저항이 너무 심해서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 떠나거나 축출되었습니다. 첫째로 떠난 아들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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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6,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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