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은 54세에 승하했다. 69세에 죽은 맏형 양녕대군이나 92세에 임종한 둘째형 효령대군보다 훨씬 단명했다. 실록 등 각종 기록이 전하는 세종의 실제 모습은 1만 원권 화폐에 나오는 어진(御眞)과는 거리가 멀다. 실록은 세종에 대해 ‘비중(肥重)’ ‘건습(蹇濕)’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말로 하면 비만이거나 과체중이었고, 다리를 절었다(蹇)는 얘기다. 풍수가에 따르면 이장할 때 세종대왕릉인 영릉에선 ‘다리 짧은 대왕이 영원히 쉴 자리(短足大王 永乏之地)’라는 비기(碑記)가 나왔다고 한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운동에 많은 장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 비친 세종의 모습은 그가 왜 형제들이나 다른 왕들에 비해 단명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생각은 늘 자신의 건강보다 조선의 미래와 성리학적 도덕관의 완성에 치우쳐 있었다. 아무리 아파도 항상 백성과 신하를 먼저 챙겼다. 재위 14년 세종은 갈증이 심해지고 살이 확 빠지는 증세로 내의원을 심각한 고민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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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9,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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