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자호란은 인조에게 삼전도의 치욕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란이 끝난 이후에는 청에 포로로 잡혀갔다 조선으로 도망 온 사람들을 잡아 다시 돌려보내는 ‘쇄송(刷送)’ 문제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당시 쇄송의 참상을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이역 땅에 잡혀가 돌아온 백성을 도적들처럼 결박하니, 자식은 부모와, 남편은 아내와 생이별을 했다. 헤어질 때 스스로 목매 죽기도 하고, 굶어 죽기도 하며, 수족을 잘라 이별을 늦추려 하거나 도중에서 죽기도 했다.” 인조는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말을 하려면 목이 메며 부끄럽고 두려워서 나를 용서할 수 없다”고 당시의 고통을 표현했다. 이후 인조는 두 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첫 번째는 사수(邪수·귀신이 붙은 듯 제정신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되는 증상), 두 번째는 이명(耳鳴·귀울음)이다. 예조참의 이준은 “왕의 병은 원기가 허약해 생기는 호매(狐魅·여우에게 홀린 듯 정신 줄을 잃는 질환)나 사수라는 질환으로 보인다”고 진단한다. 이에 부
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PbTjMN
via
자세히 읽기
October 22, 2018 at 03:00A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