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사(甲士) 박타내(朴他乃)가 창을 가지고 나아가서 잘못 찌른 까닭에 호랑이에게 물려 거의 죽게 되었다. 도승지 신면에게 명하여 극진히 약으로 구호하도록 해 궁궐로 돌아왔으나, 이튿날 박타내가 죽었다.” ―세조실록 38권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랑이 사냥터였다. 원나라는 고려에 호랑이 전문 사냥꾼인 착호인(捉虎人)을 직접 보내 호랑이를 사냥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1237년 9명, 1277명 18명의 원나라 착호인이 고려에서 호랑이를 사냥했다. 그만큼 한반도에 호랑이가 많았다. 호랑이 관련 이야기도 많아, 육당 최남선은 우리나라를 호담국(虎談國)이라고 했다. 최상위 맹수 호랑이는 조선의 큰 걱정거리였다. 호랑이는 한양 도성 안에도 출몰했고, 마을 인근에 서식하며 사람을 물어 죽였다. ‘어우야담’을 남긴 유몽인은 호랑이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호정문(虎穽文)’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호환을 묘사했다. ‘호정문’ 내용처럼 행상이 지름길로 가다가, 초동이 나무하고 꼴을 베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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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0,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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