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전에 가서 소금꾼들과 약정을 하되, 30냥을 염전에 맡겨놓고 3년 동안 소금을 받아다가 장사를 하고 3년 후에는 맡겨놓은 돈을 찾아가지 않겠다고 하면 소금꾼들이 틀림없이 좋아라고 응할 것입니다. 소금을 지고 100리 안쪽을 두루 돌아다니되, 값을 당장 받아낼 일이 아니라 외상을 남겨두어 인정을 맺고 단골로 만들면 반드시 이득이 많을 것입니다.”―‘동패낙송(東稗洛誦)’ 예로부터 소금은 매우 중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도 제주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의 바닷가에서 소금을 생산했다. 소금을 생산하는 곳을 염소(鹽所) 염장(鹽場) 염전(鹽田)이라 했고, 생산자를 염한(鹽漢) 염간(鹽干) 염정(鹽丁) 염부(鹽夫)라고 했다. 관청에 속한 염부는 염장관(鹽場官)의 관리하에 소금을 생산하고 그 판매 수입으로 생활했다. 민간업자도 비교적 자유롭게 소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생산된 소금을 운송하여 판매하는 사람들을 염상(鹽商)이라고 했다. 유수원(柳壽垣)의 ‘우서(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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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7,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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