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는 지역 특산품을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제도가 있었다. 중국에서도 사라진 불편한 이 제도를 조선이 끝까지 고집한 것은 군주와 백성이 한 가족처럼 살겠다는 조선 특유의 가족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백성들은 어버이 같은 군주가 먹고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특산품을 진상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실제 백성들은 진상제도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최고는 전복이었다. 정조 때 기록을 보면 한 해에 제주도 821개, 전라도 450개, 충청도 300개, 경상도 170개 등 총 1741개가 진상됐다. 세조 때 중추원사였던 기건(奇虔)은 제주 백성들이 전복 진상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 한다. 선조실록에는 당시 해안가 백성들에게 전복 진상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나온다. “진도(珍島) 사람으로 왜구에 잡혀가 정착한 사화동(沙火同)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는 붙잡혀온 조선 포로에게 ‘조선은 부역이 매우 고되고 대소(大小)의 전복을 한정 없이 징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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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5,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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