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수력발전 시설에서 남한으로 보내던 전기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거리를 달리던 전차가 멈춰 섰고 얼마 되지 않던 산업시설마저 순식간에 마비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67달러였을 때다. 정부는 이듬해 준공된 목포 중유발전소와 미국이 지원해준 일렉트라호를 비롯한 2대의 발전선으로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자원이 없는 한국은 원자력발전에 승부를 걸었다. 원자력이 ‘두뇌에서 캐는 에너지’로 불리는 이유다. 1956년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만들고 연구생들을 미국 아르곤연구소에 파견했다. 1958년 한양대, 1959년엔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하고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78년 4월 첫 원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1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4번째로 ‘제3의 불’을 점화한 나라가 됐다. 선진국들이 핵실험을 할 때 원자력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한국이 세계 4대 원전 수출국으로 거듭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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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8,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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