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기시(軍器寺)의 궁인(弓人)과 시인(矢人)을 중국 사신의 청지기로 삼았는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을 귀중하게 여기니, 그들과 함께 지내면 틀림없이 활과 화살을 매매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됩니다.”―‘성종실록’ 중에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렸다. 큰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양만춘은 안시성에서 당나라 태종의 한쪽 눈을 화살로 맞혔다. 날아가던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혔다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도 유명하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신궁으로 불리는 활솜씨로 우리 땅을 유린하는 오랑캐를 섬멸했다. 이들이 사용한 활을 만든 이가 궁인이다. 활 만드는 궁인과 화살 만드는 시인은 다른 장인보다 우대받아 ‘장(匠)’이 아니라 ‘인(人)’으로 불렀다. 세종 때 내궁방(內弓房)을 설치하고 40명의 궁인을 두었으며, 이 밖에 서울과 지방에서 모두 500명이 넘는 궁인이 활을 만들었다. 활에 쓸 나무를 구하러 갈 때는 말이 제공되었고 지방관의 접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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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2,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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